컨텐츠바로가기 하단메뉴바로가기

불꽃의 여자 시몬 베유

불꽃의 여자 시몬 베유

책 소개

사유와 투쟁에 삶을 바친 철학자이자 노동운동가 시몬 베유, 그녀의 뜨거운 정신과 진솔한 삶을 최초로 한국에 소개한 시몬 베유 전기 복간 한평생 노동운동과 반전운동에 투신했던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실천가 시몬 베유. 그녀는 제1차 세계대전의 황폐함과 제2차 세계대전의 불안이 공존하던 시기의 유럽에서 철학 교사로, 공장 노동자로, 스페인 내전의 군인으로, 나치에 저항하는 레지스탕스로 활동했다. 그 모든 실천의 밑바탕에는 정치, 노동, 교육, 종교에 관한 그녀만의 확고한 신념과 깨어 있는 지성이 있었다. 그녀의 독보적인 사유와 투쟁을 향한 의지는 어떤 삶의 환경 속에서 피어났을까? 어떤 사건과 인물들이 그녀의 사상과 행보에 영향을 끼쳤을까? 이 책은 시몬 베유의 절친한 친구이자 파리 고등사범학교 동기생이었던 시몬 페트르망이 집필한 시몬 베유의 전기로, 1973년에 출간되었다. 베유 연구의 최고 권위자인 페트르망은 그녀의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 공장 생활과 참전 시기는 물론 후반부의 반(反)나치 활동과 마지막 순간까지, 베유가 세상에 남긴 모든 흔적과 기록을 집대성했다. 이 책 『불꽃의 여자 시몬 베유』는 『중력과 은총』, 『일리아스와 힘의 시』, 『신의 사랑에 관한 무질서한 생각들』과 같은 베유의 대표 저작들이 탄생한 역사적인 배경과 삶의 맥락을 거의 완벽하게 부연한다. 또한 우리 시대의 폭력과 억압의 문제를 새롭게 성찰함으로써, 우리가 각자만의 방식으로 세계에 참여할 수 있도록 이끈다. 그녀의 삶 자체가 세계를 사랑하는 숭고한 마음과 풍부한 학문적 지식으로 직조된 하나의 설득력 있는 언어이기 때문이다.

차례

어린 시절 1909-1925 알랭과의 만남 고등사범학교 입학시험 준비 1925-1928 고등사범학교 시절 1928-1931 르 퓌 시절 1931-1932 독일 여행 1932-1933 로안 시절 1933-1934 공장 생활 1934-1935 부르주, 인민전선의 초기 1935-1936 스페인 내전과 인민전선, 이탈리아 여행 1936-1937 생-캉탱과 솔렘 : 두 번째 이탈리아 여행 1937-1938 내면의 새로운 경험과 평화주의 포기 1938-1939 제2차 세계대전 발발 1939-1940 마르세유 I 1940-1941 마르세유Ⅱ 1941-1942 뉴욕 1942 런던 1942-1943 번역을 끝내며

저자

시몬 페트르망Simone Pétrement
"1907년 알제리에서 태어났다. 시몬 베유와 함께 앙리 4세 고등중학교에 다녔고, 알랭에게 철학을 배웠다. 고등사범학교 동기생이기도 했던 베유와 절친한 사이였다. 1931년 철학 교수 자격시험에 합격했고, 1947년에는 문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프랑스 국립도서관 학예사이기도 했다. 시몬 베유 연구의 최고 권위자로서 베유의 사상과 생애를 훌륭하게 집대성했고, 1974년 이 책으로 아카데미 프랑세즈 문학상을 수상했다. 1985년에는 신학적 에세이 『분리된 신 : 그노시스주의의 기원』으로 아카데미 프랑세즈 몽티옹 상을 받았다. 1992년 프랑스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다."

역자

강경화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 197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 전 동덕여자대학교 영문학과 교수. 저서로 시집 『늦가을 배추벌레의 노래』, 『가라, 사랑의 세월이여』, 『이제 나는 머물지 않을 수 있는데』, 『사랑은 어디 있나요』와 수필집 『사랑을 바꾸세요』 등이 있다.

출판사 리뷰

절망의 시대로 던져진 고귀한 영혼, 어긋난 세계에서 길을 찾다 시몬 베유는 1909년 프랑스 파리의 유대계 부르주아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녀에게는 어린 시절부터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남다른 능력이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 중 참호의 병사들에게 식량이 부족하다는 소식을 들은 베유는 자기 몫의 식량을 군인들에게 보내려 했으며, 중국에 대기근이 났다는 소식에 오열하기도 했다. 또한 지적인 재능과 솔직하고 따스한 심성을 함께 지니고 있어 언제 어디에서나 혁명적인 기질을 보였다. 고등중학교 시기 이전부터 친구들에게 자신은 “볼셰비키”라고 했고, 학교 동기생이었던 시몬 보부아르에게 “당신은 아직 배를 곯아본 적이 없군” 하고 말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렇지만 몸은 태생적으로 허약했다. 어릴 때 이미 죽을 고비를 넘겼던 베유를 두고 가족들은 그저 그녀가 살아 있는 것에 감사했을 정도였다. 베유는 철학 공부에서 해방의 길을 모색했다. 고등중학교 시절에 만난 철학자 알랭의 가르침이 정신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전쟁의 폐허와 불안 속에서 세상을 구원할 진실을 향한 열망은 더욱더 커져만 갔다. 1928년에는 프랑스의 최상위 교육기관인 파리 고등사범학교에 입학하여 본격적으로 철학을 공부했고, 철학 교수 자격시험에 합격하여 르 퓌 고등여자중학교에서 철학과 그리스어를 가르치기도 했다. 또한 마르크스주의를 깊이 있게 연구하고 관련된 글을 많이 남겼다. 하지만 그만큼 현실의 소련 체제에는 실망할 수밖에 없는데, 러시아의 정치제도가 결국 국가 권력을 위해 노동자들을 노동수단에 예속시키고 있다고 보았다. 스탈린 정부로부터 추방되어 프랑스로 망명을 온 트로츠키와 밤새 열띤 토론을 펼치기도 했다. 베유는 끝까지 공산당에 가입하지 않은 채로 노동조합 운동에 전념했고, 언제나 노동자들과 어울려 지냈다. 이렇듯 베유는 어떤 절망 속에서도 곧 그것을 극복할 진실을 발견했고, 무엇보다도 스스로 진실을 재건해나갔다. 사상과 실천 사이에 어떠한 빈틈도 없던 시대의 지식인, 눈부시게 빛나던 사랑과 의지의 투쟁은 하나의 길로 통했다 베유의 삶을 따라 걷다 보면 언제나 사회의 가장 큰 고통이 존재하는 장소에 도달한다. 자신의 희생으로 구원할 수 있는 존재들을 찾아나섰고, 비참한 사람들의 고통을 대신했다. 그녀는 당시 유럽의 사회주의 노동운동에 깊이 관여하며 적극적으로 노동자 파업을 지원했다. 1934년에는 실제 공장에 들어가 노동자 생활을 시작했다. 월급의 절반을 파업 광부들에게 기부하고, 하층계급과 같은 생활을 고집했다. 주거와 의복은 물론 음식을 거의 먹지 못하는 것까지도 그들과 함께했다. 1936년 스페인 내전이 발발했을 때에는 바르셀로나의 무정부주의자 부대에 합류해 군인들과 고난을 함께했다. 1940년 이후 프랑스가 독일에 점령당하고 파시즘 세력이 유럽 전역을 위협하자 미국 뉴욕으로 피신할 수밖에 없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영국 런던으로 가서 드 골이 이끄는 프랑스 해방운동에 합류했다. 이렇듯 참여를 동반하지 않는 사유는 베유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또한 현실에 타협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던 그녀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안전한 소속을 거부했다. 유대인이지만 유대인의 민족주의를 경계했고, 노동운동에 삶을 투신하면서도 공산당원이 되지 않았다. 또한 신의 사랑과 구원에 삶을 기대면서도 끝까지 교회 바깥에 머물렀다. 시몬 베유는 분명 동시대 지식인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입체적인 인물이었다. 후대의 여러 철학자들과 작가들은 바로 이런 부분에서 큰 영감을 받았다. T.S.엘리엇은 “베유의 영혼은 그녀의 천재성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숭고하다”고 했으며, 알베르 카뮈는 베유를 “우리 시대의 유일한 위대한 정신”이라고 칭송했다. 세계를 향한 열렬한 사랑으로 타올랐던 그녀의 불꽃 같은 삶 전부를 담은 이 전기는, 우리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영원한 텍스트로 남을 것이다.

함께하면 좋은 책